선택형 리스닝 by 김희원

최근 김영하 작가의 힐링캠프 강연을 보았다.

사실 나는 김영하의 소설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고 신작이 나오면 낭독회도 신청해 다녀올만큼 김영하 작가님의 팬인지라 많은 기대를 안고 봤다.
하지만 내 기대에 반해 방송된 강연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미 한 번 본 강연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청춘 페스티벌에서의 강연은 워낙 인상 깊게 들은 강연이 방송물을 타서 이러저러하게 가감됐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을 뿐만 아니라 강연 내용도 구구절절 와닿았다.

하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나는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고 남발되던 효과음 때문이었을까, 진행자의 뜬금 없는 리액션 때문이었을까. 그 어떤 것도 내가 느끼던 불편함의 원인을 속 시원히 파해쳐 주지 못했다.

그 다음 날 sns에서 우연찮게 본 게시물에서 그 불편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평소처럼 별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던 중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게시글에서 김영하 작가의 반가운 얼굴을 다시 만났다.
그 게시물은 방송을 캡쳐한 여러 장의 사진과 "옛날 한국과 현재 한국. 현실적이네요..."라는 코멘트로 그의 힐링 캠프 강연을 일축하고 있었다. 글은 다음과 같은 자막이 담긴 두 장의 캡쳐로 끝나 있었다.

"명분! 도리! 타인의 시선! 에 얽매여 사는 대한민국"
"그런데 이게 끝도 한도 없습니다."

sns 게시글에서 만난 김영하 작가는 경제 성장이 눈부시던 세대를 살아 온 70,80년대 세대들에게는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선택의 여지가 주어졌었지만 현재를 살아 가는 청춘들은 저조한 경제 성장률과 취업난에 시달려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며, 안그래도 심난할 청춘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분명 방송에서 본 강연의 요지는 이러이러하므로 타인이 만든 성공과 실패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도록 견고하고 풍성한 내면을 기르자는 것이었는데 강연의 핵심을 도마뱀의 꼬리처럼 잘라 버린 강연은 더 이상 도마뱀이 아닌 개구리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이 글에 많은 사람들은 "이게 현실이지," "답답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라는 식의 댓글을 남겼고 그 중 71개의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멘토라는 것들은 그럴싸한 말만 늘어 놓고 돈 벌어 먹는다" 라는 비난까지 하고 있었다.

아, 나의 (?) 김영하 작가님이 이런 악마의 편집에 놀아나다니.

그제서야 나는 방송을 보며 느낀 답답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건 바로 방송 곳곳에 묻어 있던 편집자의 의견이었다.
방송의 편집자는 강연을 본인 나름대로 해석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대목을 효과음과 자막 등으로 강조하고 비교적 덜 중요하다고 생각한 대목은 과감하게 삭제해 자신만의 강연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에 sns 게시자의 너무나도 과감한 손을 타서 편집되자 본래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게 된 것이었다.

책보다는 TV로, 사설보다는 sns로 세상을 접하는 세대.
이 세대를 살아 가며 나는 다른 사람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견고한 내면을 쌓을 수 있을까?
과연 어디까지가 나에게서 비롯된 의견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나의 우상이 "그럴싸한 말로 돈 벌어 먹는 멘토"라는 모욕을 뒤집어 쓰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나는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가장 중요한 뒷 부분 내용이 안 올라와서 답답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 글 씁니다. 이날 김영하님 강연의 요지는 지금 세대가 이전의 세대보다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성공의 기준을 돈 잘 버는 것 하나로 두지 말고 각자의 기준에 맞는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회적, 개인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과 그 기준을 위해 풍성하고 견고한 내면을 기르는 훈련을 하자는 것이 뒷부분의 내용이자 강연의 요지였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아... 이런 결말이 있었구나" 하며 안심 섞인 수긍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는 견고한 내면을 쌓는 것의 중요성이 더욱 더 와닿으며 결과적으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마저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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